나는 조각배
김용택
집에서 놉니다.
노니, 좋습니다.
아파트 정원에 산딸나무 꽃이 피었습니다.
희고 고운 꽃잎들이 초록의 나뭇잎 위에
십자 모양으로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피었습니다.
초여름꽃은 흰 꽃들이 많답니다.
이팝나무 꽃, 층층나무 꽃,
때죽나무 꽃 때죽나무 꽃은 대롱대롱 매달려 피지요.
꽃술 끝이 노란 그 꽃들도 희고 곱답니다.
꽃이 질 때 그것들을 오래오래 바라보면
내 몸에 실린 짐들을 하나둘 몸 밖으로 던지는 꿈을 꿉니다.
마음의 짐을 다 내려놓으면 눈이 저절로 감깁니다.
눈이 감기면 내 몸은 빈 배가 되어
어느 먼 곳으로 기우뚱기우뚱 떠갑니다.
한없이, 한이 없이, 좋습니다.
순수한 바다, 먼 수평선 너머로 나는 나를 놓고 깜박 꺼져서.
그래요.
그렇게 당신의 흰 발뒤꿈치에 가만히 가닿고 싶은
나는
한 조각
빈 배지요.
김용택 『키스를 원하지 않는 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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