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어디에 묻으랴
고 이한열 열사를 추모하며
나희덕
우리에게 땅이 없다
그대의 시신을 안고 도망쳐 나왔지만
따뜻하게 묻어줄 땅이 없다
병원 입구마다 몇 겹의 경찰들이
에워싼 그런 땅 말고,
우리가 그대를 따라 걸어가는 행렬이 되고
열려진 하늘 아래 그대의 무덤을 만들
몇 줌의 흙, 몇 발자국의 자유가
우리에게 없다
그대를 어디에 묻으랴
그대를 두고두고 어디에서 만나랴
죽음에 대해 자주 무디어지는 습관을
어느 곳에 무릎 꿇고 용서받으랴
망월동에서, 4.19묘지에서
묻힌 그대들을 만나는 그 순간마다
아직도 땅 없음을 어찌 다른 말로 둘러댈 수 있으랴
우리에게 땅이 없다
이제 그대가 누운 세 치의 죽음만이
우리의 깨끗한 땅이다
나희덕 『뿌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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