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 속의 물고기

손택수




출판사 신간 보도자료 들고 광화문 신문사들 돌아다니다

나무 아래 구두 벗어놓고 잠시 땀을 식히는데

어디서 날아온 것인가 구두 속으로 들어간 나뭇잎이

그 옛날 강가에서 놀다 고무신 속에 품어온 각시붕어 같다

족두리를 닮은 지느러미가 흔들릴 때마다

먼 훗날 만날 각시를 생각하며 흐뭇해하던 아이가 있었다.


각시야 각시야 쌀 장만하러 돌아다니다

늙어버린 구두를 용서하렴

결혼기념일도 잊고 생일도 잊고

너를 풀어놓을 우물마저 잊어버렸구나

우물에 대고 부르던 노래도 더는 들려줄 수 없구나


여울돌에 낀 이끼를 뜯어 먹더라도

나는 한때 그 강으로 돌아가고 싶었는데

등을 뚫는 아픔 없이 어찌 풍경이 될까

절집 처마 끝에 올라 풍경소리 들려줄 수 있을까

다독이며 다독이며 참으로 멀리도 흘러왔는데


나뭇잎은 땀에 전 바닥에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는다

내 몸 어디에 아직 떠나온 강물소리 출렁이고 있을까만

그 옛날 영산강 배꼽다리 대숲 마을

고무신 속 각시붕어처럼

젖은 구두 벌어진 어항 속을 유영하고 있다



손택수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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