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 속의 물고기

손택수




출판사 신간 보도자료 들고 광화문 신문사들 돌아다니다

나무 아래 구두 벗어놓고 잠시 땀을 식히는데

어디서 날아온 것인가 구두 속으로 들어간 나뭇잎이

그 옛날 강가에서 놀다 고무신 속에 품어온 각시붕어 같다

족두리를 닮은 지느러미가 흔들릴 때마다

먼 훗날 만날 각시를 생각하며 흐뭇해하던 아이가 있었다.


각시야 각시야 쌀 장만하러 돌아다니다

늙어버린 구두를 용서하렴

결혼기념일도 잊고 생일도 잊고

너를 풀어놓을 우물마저 잊어버렸구나

우물에 대고 부르던 노래도 더는 들려줄 수 없구나


여울돌에 낀 이끼를 뜯어 먹더라도

나는 한때 그 강으로 돌아가고 싶었는데

등을 뚫는 아픔 없이 어찌 풍경이 될까

절집 처마 끝에 올라 풍경소리 들려줄 수 있을까

다독이며 다독이며 참으로 멀리도 흘러왔는데


나뭇잎은 땀에 전 바닥에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는다

내 몸 어디에 아직 떠나온 강물소리 출렁이고 있을까만

그 옛날 영산강 배꼽다리 대숲 마을

고무신 속 각시붕어처럼

젖은 구두 벌어진 어항 속을 유영하고 있다



손택수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나는 조각배

김용택




집에서 놉니다.

노니, 좋습니다.

아파트 정원에 산딸나무 꽃이 피었습니다.

희고 고운 꽃잎들이 초록의 나뭇잎 위에

십자 모양으로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피었습니다.

초여름꽃은 흰 꽃들이 많답니다.

이팝나무 꽃, 층층나무 꽃,

때죽나무 꽃 때죽나무 꽃은 대롱대롱 매달려 피지요.

꽃술 끝이 노란 그 꽃들도 희고 곱답니다.

꽃이 질 때 그것들을 오래오래 바라보면

내 몸에 실린 짐들을 하나둘 몸 밖으로 던지는 꿈을 꿉니다.

마음의 짐을 다 내려놓으면 눈이 저절로 감깁니다.

눈이 감기면 내 몸은 빈 배가 되어

어느 먼 곳으로 기우뚱기우뚱 떠갑니다.

한없이, 한이 없이, 좋습니다.

순수한 바다, 먼 수평선 너머로 나는 나를 놓고 깜박 꺼져서.


그래요.

그렇게 당신의 흰 발뒤꿈치에 가만히 가닿고 싶은

나는

한 조각

빈 배지요.



김용택 『키스를 원하지 않는 입술』



천문학의 역사


천문학의 역사는 아주 고대부터 시작되었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인류가 항상 하늘을 바라보며 살아왔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늘을 바라보며 인류는 황도 12궁, 별자리 지도, 각도의 기본 단위인 60진법 등을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이렇게 천문학이 고대부터 발달한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부터 고대부터 천문학이 발달하게된 이유와 그 역사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려고 한다.


고대의 천문학

 3000년 전, 수메르인과 바빌로니아인은 가장 처음 하늘에 대한 내용을 기록으로 남겼다. 수메르의 천문학자들은 황실의 후원을 받으며 하늘을 관찰하여 황도 12궁도, 별자리 지도를 최초로 만들고, 60진법을 만들어냈다. 당시의 바빌로니아의 천문학자들은 지구의 공전주기와 세차운동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이 천문학을 연구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정치적인 목적과 농업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와 비슷한 동시대에 훗날의 대영제국은 현재 관광지로 잘 알려진 스톤헨지와 여러 역법장치 역할을 하는 수많은 천문학 유적들이 세워졌다. 이집트 역시 별자리 지도를 그리며 이를 피라미드 건설 등의 건축사업에도 이용했다. 

 그리스 철학자들의 경우에는 우주의 구조에 관한 고민은 최초였지만 완벽한 기하학적 형태라는 전통적 관습에 얽매여 이를 개발하지 못했다. 일례로 기원전 350년경 아리스토텔레스는 지구를 중심으로 두고 그 주위를 태양과 달, 행성, 별들이 각자의 고유한 주기로 끊임없이 돌고있다는 원형 구조 우주모형을 제시했다. 이는 실제로 관측된 천문 내용을 바탕으로 했지만 관측사실을 그대로 반영하지 못했으며, 지구는 고정되어 있다는 그리스의 철학적 관습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그리스에도 세밀한 관측자료와 고찰을 토대로 정확한 우주관을 제시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기원전 500년경의 피타고라스와 400년경의 플라톤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월식때 관찰 가능한 지구 그림자의 형태와 북쯕이나 남쪽으로 여행할 때 달라지는 천체의 모습을 근거로 하여 지구는 둥글다는 주장을 했다. 기원전 200년 경에는 에라토스테네스라는 학자가 위도에 따라 햇빛의 각도가 달라지는 것을 보고 지구의 반지름을 계산했다. 또한 기원전 280년 경의 아리스타르쿠스는 지구는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가설을 최초로 제시하기도 했다. 그리스 천문학자들의 지속적인 의문의 대상은 바로 움직이지 않는 별, 즉 항성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행성, 이른바 떠돌이 별의 움직임 이었다.

 그렇다면 고대 천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고대 천문학을 집대성한 사람은 누구일까? 그는 바로 프톨레마이오스라 할 수 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140년경에 살았던 학자로, 지구 주위를 돌고 있는 여러 행성들의 복잡한 움직임을 관찰했고, 이를 통해 모두 알만한 천동설을 주장했다. 그가 제시한 우주모형은 지구가 중심에 고정되어 있고 그 주위에 여러 개의 원이 겹쳐져 있으며 그 원 위에 태양, 달, 행성, 항성 같은 천체들이 고정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행성의 역행현상을 항성을 고정하고 있는 원은 일정한 방향으로 도는 것에 반해 행성이 고정되어 있는 원의 경우 동쪽으로 돌다가 잠시 왼쪽으로 돈 후 다시 동쪽으로 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원칙인 정의를 내릴 때에는 관찰한 사실을 바탕으로 한다는원칙에 충실했던 프톨레마이오스의 업적으로, 이 덕분에 프톨레마이오스는 고대 천문학사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중세의 천문학

 그리스와 로마의 영향력이 고대 중동지역에서 쇠퇴하게 되자 관찰에 바탕을 두었던 천문학은 발전하지 못한 상태로 약 1300년 동안 정지된 상태에 머무를 수 밖에 없었다. 비슷한 시기에 아메리카 대륙에서 여러 문명들이 유럽에서 만들어진 천문학 유적들과 굉장히 비슷한 유적들을 만들어냈다. 중세의 천문학에서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곳은 바로 이슬람 세계이다. 유럽의 천문학은 중세시대 동안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이에 반해 이슬람의 천문학자들은 활발한 활동을 했다.

 이슬람 사회는 지중해 유역에서 번성을 하며 서로 협력하여 천문학을 발전시켰다. 이들은 정확한 천체관측을 바탕으로 종교적인 관습 역시 확립해 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이들은 별의 밝기를 측정하며 정확한 목록을 작성하기도 하였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삼각법을 더욱 발전시켰다. 이에 더해 프톨레마이오스의 행성 운동모형을 세련되게 다듬기도 하고, 별자리에 이름을 붙여 정리했다. 이 때 붙여진 별자리 이름들은 지금까지도 그대로 사용되는 것도 있으며, 약간의 수정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중세시대에는 이슬람 사회뿐 아니라 여러 다른 문명들도 천체를 관측했으며 이를 기록으로 남겼다. 일례로 중국의 황실 기록에는 혜성과 손님별이라고도 불리는 초신성의 출몰이 나온다.


르네상스시대의 천문학 : 코페르니쿠스 혁명

폴란드의 성직자인 코페르니쿠스는 16세기 초에 이제까지의 우주관을 뒤엎어버리는 혁신적인 가설을 제시했다. 그는 우주의 중심이 태양이며, 지구는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는 행성일 뿐이라는 가설을 제안한 최초의 근대적 천문학자이다. 코페루니쿠스의 가설에 따르면 태양과 별의 일주운동은 지구의 자전과 관계가 있으며, 1년을 주기로 바뀌게 되는 천구의 모습은 지구가 궤도운동을 한다는 증거가 된다고 한다. 또한 행성의 역행운동의 경우에 태양 주위의 행성들이 도는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 했다. 하지만 이러한 가설을 제시한 코페르니쿠스 조차 천체는 완벽한 원운동을 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 '천체의 회전에 대하여'라는 1543년에 발간된 그의 저서에는 천체모형이 실려있는데 이 천체모형은 1300년 전 프톨레마이오스가 제시했던 천체모형과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 하지만 코페르티쿠스는 혁명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변화된 그 후의 200년에 걸쳐 진행될 우주 개념의 초석이 되었다는 것에 큰 의미를 가진다.

 덴마크 출신의 천문학자인 티코 브라헤는 프톨레마이오스가 제시했던 모형과 코페르니쿠스의 새로운 모형 모두 잘못되었다는 것을 관찰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17세기를 30년 정도 앞둔 시기, 브라헤는 천체관측을 시작했으며, 그 누구보다 정확하게 행성의 운동과 별자리를 관측했고, 자신만의 독특한 우주모형을 제시했다. 그가 제시했던 우주모형의 형태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며, 그 주위를 태양과 달이 돌고, 다른 행성은 그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는 굉장히 독특한 형태였다. 1601년 갑작스러운 브라헤의 죽음 이후, 그가 관측했던 천체 자료들을 독일의 천재 수학자 케플러가 물려받았다. 브라헤가 관측한 정확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케플러는 지난 2000여년 동안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들은 원운동을 한다는 믿음과 달리 원운동이 아닌 타원운동을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행성의 움직임은 공전궤도가 태양과 가까워질 수록 빨리지게 되고, 태양에서 행성사이의 거리와 행성의 공전주기 사이에는 정확한 수학공식이 있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현재의 행성운동에 관한 케플러의 법칙은 1609년 부터 1619년까지 발표되었으며, 이러한 케플러의 법칙이 행성의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게 됨으로써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은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되었다.

 네덜란드의 한스 리퍼세이는 유용한 관측장비인 더치망원경을 발명했다. 그 이듬해에 이탈리아의 실험주의 과학자인 갈릴레오가 이를 개조해서 인류의 역사상 최초로 망원경으로 천체를 관측한 사람이 되었다. 갈릴레오는 망원경을 통한 천체 관측을 통해 달 표면의 모습, 태양의 흑점과 태양 주위를 도는 금성의 위상과 겉보기 크기의 변화, 목성의 주위를 도는 네 개의 위성을 찾아내게 되었다. 갈릴레오의 이 발견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지구는 움직이지 않고 중심에 정지상태로 머물러 있고, 모든 천체가 지구 주위를 원운동하고 있다는 수천 년 동안 지속되어온 사상과 정면으로 대치가 되는 것이며 이는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가설을 뒷받침한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가톨릭의 교리를 우롱했다는 죄목으로 1633년 갈릴레오는 재판 후 가택에 연금이 되었지만, 이는 믿음보다 관찰이 더 중요하다는 과학의 전통을 새롭게 세우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 Recent posts